
이 책 형식이 상당히 재미있다. 도킨스, 굴드, 핑커 같은 1급의 진화학자들이 가상의 토론회에 모여 현대 진화론의 여러 쟁점들에 대해서 각자의 의견을 내세우며 날이 선 논쟁을 벌이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, 마치 피 튀기는, 아니 침 튀기는 '100분 토론'을 볼 때와 비슷한 쾌감을 준다. 100분 토론 보면 알겠지만 절대 서로 예의 안 차리지 않던가. 그래도 세계적 석학들이라는 분들이 모여서 서로 상대를 긁어대고 비아냥대고 서로를 바보 취급하는 와중에 느껴지는 아슬아슬한 스릴! 그래, 이러니 이 사람들이 맨날 싸웠었지! 손에 땀을 쥐고 관전하다가 모르는 사이에 차곡차곡 알게 되는 현대 진화론의 경향과 쟁점들. 가상으로 꾸민 이야기라는 건 알지만 정말 마음에 들더라.
아아.. 실제로 이런 이벤트가 있었으면 정말 대박이었을텐데, 그저 꿈에 그칠 수 밖에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. 굴드 선생이 유명을 달리한 지금에서야 절대 이뤄질 수도 없기도 하겠고.
이 책의 정말 무서운 부분은 뒷 부분에 나오는 '이 책을 만드는데 들어간 재료들' 장이다. 참고 도서들을 번역서 원서할 것 없이 줄줄줄 소개해주고 있는데, 더할 나위 없는 일품의 뽐뿌더라. 보다가 하나하나 사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. 이 책 저자 장 선생님, 이 책들 사도 저는 도저히 볼 여유가 없답니다. 좀 봐주세요. -_-;;
실은 참지 못 하고 바로 어제 강남 교보문고 자연 과학 코너에 갔었다. 기분 탓인지 '진화론'을 다룬 책이 한가득 쌓여 있었는데, 뭐랄까, 그 많은 책들을 바라 보고 있자니 왠지 바야흐로 진화론의 새로운 중흥기가 온 게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들더라. 확고부동한 주류라는. 역설적이지만 지적설계론의 창궐이 역풍을 불러와서 진화론을 다룬 대중과학도서가 이리 많이 늘어나게 만든건지도 모르겠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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